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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이 영월로 유배된 후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엄 흥도, 추 익한, 정 사종 충신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영월군민의 오랜 숙원에 의해 1997년에 건립되었으며, 매년 한식때 제를 올리고 있다
엄 흥 도
엄흥도는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동을지산 기슭에 암장한 충의지사이다. 단종이 관풍헌에서 사약을 받고 승하하자,관가에서 동강에 단종의 시신을 버리며 '왕명으로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엄흥도는 아들 3형제와 같이 남몰래 시신을 거둔뒤 뿔뿔이 흩어졌다. 1726년 영조는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정여각을 세웠으며 , 1758년에 창절사에 봉안했다. 1833년 순조 때는 송조판서 (정2품)로 승직했고, 1877년 고종은 충의공이란 시호를 내렸다.
정 사 종
영월 호장 엄흥도와 함께 단종의 시신을 거둔 충신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군위현감을 지내던 정사종은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되자 군위현감직을 사직하고 순흥에 유배된 금성대군을 찾아 단종 복위 운동을 돔했으나 실패했다. 그 뒤 영월에서 숨어 살던 정사종은 1457년 10월 24일 단종이 사약을 받고 승하하자 호장 엄흥도와 같이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암장하고 , 아들에게 '너는 농촌으로 돌아가 이후 자손들과 나무나 하고 소를 기르며 살며, 공명은 구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청령포 깊은 물에 투신 자결했다.
추 익 한
시와 학문에 빼어난 학자로, 유배 생활을 하던 단종을 목숨을 걸고 보필한 충신이다. 오랜 관직생활을 청산하고 영월로 낙향한 추익한은 그무렵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자 , 충청감사로 있던 박팽년으로부터 유배중인 노산군을 잘 보필해 달라는 서찰을 받고 과일등의 음식을 봉헌하며 밤낮으로 보살펴 주었다. 1457년 10월 24일 단종이 승하하던 날 , 꿈속에서 단종이 백마를 타고 행차하는 모습을 보고 '어디로 행차하시옵니까?'하고 물으니 '나는 장차 태백산으로 가려 한다'고 말한뒤 사라졌다 한다. 이상하게 여긴 추익한은 단종이 계시는 관풍헌으로 찾아갔지만 벌써 변을 당한 것을 보고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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