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의 민속 ⑨

수주면 무릉리(토실), 도천리, 도원리, 운학리, 두산리
1. 전설

■ 장사나고 용마난다
옛날 수주면 도원리에 살던 손씨 집에서 아기를 낳았는데 갓난아기답지 않게 너무 숙성하였고, 겨드랑이에는 날개가 돋았으며, 3일만에 실광 위에 올라가는 등 마음대로 돌아다녔다. 기가 막힌 그 집안 식구들은 어쩔 줄 몰라 하였다. 그 소문이 퍼지자 마을의 지각 있는 노인은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장사가 난 모양인데 앞으로 닥칠 일이 큰일이라고 하였다. 아이를 출산한 집이 무사할런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생각다 못한 그 집에서는 눈물을 머금고 아이를 없애 버렸다.
그런지 3일 후에 그 마을 동쪽 강 후미진 깊은 소(沼)에서 용마가 나와 주인을 찾아 헤매 다녔다. 그 용마는 사방을 날아다니다가, 수주면 무릉리 동북쪽 강 건너 마을의 벼랑을 왕래하며 슬프게 울부짖다가 주인을 만나지 못하였으므로 말이 났던 곳에 되돌아와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용마가 나왔던 소를 용소(龍沼)라고 하며, 그 옆에 용마의 무덤까지 있다고 한다. 무릉리의 강 건너 마을은 용마가 울부짖은 곳이라 하여 명마동(鳴馬洞)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지도에도 그렇게 표기되어 있다.

2. 민요

■ 아라리
가지복덜이 싹싹도려서 경드람에다 담고
앞남산천 건너다보니 임생각이 난다
아리랑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나를버리고 가시는님은 십리도못가서 발병난다
아리랑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산수갑산에 머루다래는 얽그러?必瀏?졌는데
나는언제나 유정님을 만나서 얽그러?必瀏?지느냐

무지공산에 참매미소리는 남듣기도 좋은데
장년과수 한숨소리는 남듣기도 싫어
한숨은 쉬어서 동남풍이 되고
눈물을 흘러서 대동강이 되네

3. 민속신앙

■ 두산리 서낭제와 산신제
첩첩이 쌓인 산을 비집고 들어가면 두산리가 나온다. 마을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보면 작은 다리 하나를 지나 황장금표비가 눈길을 끈다. 조금 더 올라가면 길옆으로 함석으로 된 작은 당집이 보인다. 두산에서는 아직까지 서낭제를 지내고 있다. 음력으로 9월 9일에 서낭제를 지내는데 예전에는 음력 정월에 날을 받아서 지냈으나 지금은 날을 정해 놓고 제를 지낸다. 제물은 주로 마리, 떡시루, 메를 올린다.
두산에서는 서낭제를 지낼쯤 해서 산신제를 지낸다. 날을 정해 놓고 지내는 서낭제와는 달리 산신제는 음력 9월에 날을 받아서 지낸다. 그리고 생기복덕을 맞춰서 제관을 선출한다. 제의 절차는 제관이 잔을 올리고 절을 하며 축관이 축을 읽는다. 초헌·아헌·종헌이 각각 한번씩 잔을 올리고 절을 한다. 여기에 올리는 제주(祭酒)는 날을 받아서 제를 지내는 곳에 가서 담궈 놓았다가 제일에 사용한다. 제물은 돼지머리를 올린다고 하는데, 예전에는 소를 잡아서 머리와 다리를 올렸다고 한다. 두산리의 서낭제와 산신제는 아직까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 고일리(운학 2리) 서낭제
고일리에는 서낭당이 있다. 고일 1리 길가 오른편으로 크게 자란 노송이 세 그루 있고 그 가운데쯤에 허름한 당집이 자리잡고 있다. 당집의 형태는 원형이 많이 훼손된 상태로 외벽을 함석으로 둘렀고 지붕에는 슬레이트를 올려놓았다. 당집 안에는 널빤지에 '城隍堂神'이라고 쓴 위패가 모셔져 있고 지붕 있는 부분에 신체를 만들어 모셔 놓았다.
당제사(서낭제)는 9월 9일 새벽에 지내는데, 다른 지역이 주로 정월 열 나흘이나 보름에 지내는 것에 비해 특이하다. 제를 올리기 위해 우선 생기복덕에 맞는 제관과 당주를 선정하고 금기를 철저히 지킨다. 제물 마련에 드는 경비는 집집마다 조금씩 각출해서 충당하고 있는데 술, 과일, 포, 밥과 돼지머리를 올린다. 예전부터 축을 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점도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특이하다. 소지는 마을 소지를 올린 다음 개인소지를 모두 올린다.
답사 일행은 당집 바로 앞에 노란 깃발이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 도로 확장 공사를 하기 위해 측량을 한 표시였는데 만일 그곳까지 길이 뚫린다면 서낭당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행정당국의 부주의와 무관심으로 인해 누대에 걸쳐 내려오던 전통이 사장될 위기에 처해 있다. 서낭당 앞에서 만난 김해진(72세, 남) 할아버지는 서낭당이 없어지지 말아야 한다며 걱정을 하였다. 답사 일행 모두 마음이 숙연해 졌다. 다음에 또 이 마을을 찾았을 때 없어졌을지도 모를 서낭당 앞에서 일행은 아무쪼록 오래오래 보존되기를 고개 숙여 빌었다.

4. 지명유래

■ 토실(土室) 모현사
무릉 3리의 중심마을로 도곡(道谷)또는 '톡실', '토실'이라 한다. 생육신 관란(觀瀾) 원호(元昊) 선생이 이곳에서 은둔생활을 할 때 토굴을 파고 기거했으므로 '토실'이라 하였다. 숙종(1699년)임금은 토굴 자리에 '廷謚閣'이라는 정려각을 세우게 하였다.
그후 고종 때 제천의 모산 사람인 판서(判書) 심상원(沈相元)이 참배를 하고자 왔다가 현판이 소실된 것을 보고 '모현사(慕賢祠)'라고 쓴 친필현판을 달았다. 건물을 솟을 삼문 주위로 담을 두르고 정면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사당을 건립하였다.

■ 꽃바우 약수터
요선정 입구에서 안도내[內島內]로 들어가는 도로 우측에 있다. 김암절벽의 병창에서 나오는 물을 호수로 연결하여 이용하는데 여름철에는 제천, 원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영월군 수질검사 314호로 지정 받은 곳으로 약수터 표지석은 1993년도 전국 파출서 친절봉사 1위로 전 직원이 특진한 수주지서장(이진우)과 수주면장(이태희)이 만들었다.

■ 꽃바우
각시바위와 삭삭바위 사이에 있다. 이른봄부터 이 곳 바위틈에서는 이름 모를 꽃들이 많이 피어나므로 '꽃바우'라고 한다는 얘기와 각시바위와 신랑바위 사이에 있으므로 '꽃바우'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이곳은 큰 바위가 꼴뚜서 있으므로 '꼴뚜바위'가 '꽃바우'로 변한 것 같다.

■ 신랑바우
도원리 동쪽인 중방보 입구에 있는 바위로 신랑이 사모관대를 하고 서 있는 형상의 바위이다. 꽃바우 건너편에 있다.

■ 각시바우
꽃바우 서쪽에 우뚝 솟은 바위로 그 형상이 족두리를 쓴 새색시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건너편인 설구산(雪龜山)밑에는 신랑바위가 있어서 주천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 용마개울
도원리에서 주천강으로 흐르는 개울로 이 곳에서 용마가 태어났으므로 '용마개울'이라고 부른다.

■ 용소(龍沼)
안도내 동쪽 용마무덤 밑에 있어서 '용소'라고 부른다. 이 곳은 물이 깊어서 옛날에는 명주실 한 꾸리를 다 풀어도 땅에 닿지 않았다고 한다. 물빛이 푸르다 못해 진한 쪽빛에 가까우며, 옛날에 큰 이무기(용)가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 버들강변
용소와 바닥소 사이에 있는 넓은 강변이다. 봄이 되면 동네 아이들이 버드나무 가지로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던 곳이므로 '버들강변'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실제로 '버들'이란 '곧고 길게 뻗은 곳'을 의미하므로 '버들강변'은 '곧고 길게 뻗은 강변'을 뜻하는 이름이다.

■ 안도내[內島內]
도원리의 중심이 되는 마을이다. 땅이 기름지고 농사가 잘되는 곳으로 섬안이[島內]안쪽에 자리잡고 있다고 하여 '안섬안이' 또는 '안도내'라고 부르고, 그 건너편인 주천강 밖에 있는 도천리(桃川里)는 '바깥도내'라고 한다.

■ 도천나루터
도천리, 도원리 사람들이 건너다니던 나루터로 도원교 윗쪽인 마을회관 앞에 있었다.

■ 개살이
본부락 앞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개가해온 여자가 이 곳에서 살았다고 해서 '개살이(개살이는 개가의 속된 말이다)'라는 지명이 붙었다는 얘기도 있으나, 실제로는 웅덩이 끝에 붙어 있는 논이 있는 곳이므로 '개살이'라는 지명이 붙게 되었다. 그리고 도천분교 동쪽은 개울 건너에 있는 마을이므로 '개건너'라 불렀다.

■ 멍어리바우
섬안이에서 도천리로 흐르는 섬안이강에 있는 바위로 느지내(느린내, 만천)와 섬안이강 본부락 사이에 있다. 날이 가물면 둥글게 생긴 멍울진 바위가 물 밖으로 솟아나므로 '멍울바우 → 멍어리바우'라 한다.

■ 느지내[滿川]
마을 앞에는 섬안이강이 활 모양으로 굽어져서 느리게 흐르므로 '느린내 → 느지내'라는 순수한 토박이 땅이름이 붙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느지내는 한자식 표기인 만천(滿川), 만촌(滿村)마을로 불리어 졌다. 그 앞에는 비스듬하게 누운 듯한 '느지벼루'라는 바위도 있다.

■ 단지바우
섬안이 건너편에 있는 동네로 동네 어구에 작은 항아리인 단지처럼 생긴 둥근바위가 있으므로 단지바우라고 부른다.

■ 엄둔(嚴屯)
안도내의 북서쪽 6km쯤 되는 곳에 있는 마을이다.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뒤에는 높은 둔덕배기인 '엄둔치'고개가 있으므로 '엄둔'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마을의 북동쪽에 있는 상터를 지나고 엄둔치(嚴屯峙)를 넘으면 법흥리의 응어터로 가는 길이 있고 널목재를 넘으면 법흥사가 있는 절골로 간다. '엄둔'이란 '큰 언덕'이란 뜻인 '둠'이 '둔'으로 변한 것이다.

■ 말굴이재[馬轉]
도원리에서 운학리로 질러 넘는 구비가 심하고 산세가 험악한 고개이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말[馬]을 타고 이 고개를 넘다가 말이 강물로 굴러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므로 '말굴이재' 또는 '말굴이'라고 불렀다. 말굴이재 밑에는 '말굴이'라는 동네가 있다. 그러나 말굴이재란 말이 굴러 넘어질 정도로 높고 험한 고개를 지칭하는 상징적인 뜻이지 실제로 말이 굴러 떨어졌다는 얘기는 아닌것 같다.

■ 긴소
말굴이와 섬안이[島內]사이의 강변에 있는 소(沼)인데 주변의 자연 경관이 아름답고 여름철에는 피서객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긴소'란 '깊은 소'가 변한 말이다.

■ 섬안이[島內]
횡성과 평창의 태기산에서 발원하여 둔내(屯內)와 안흥(安興)을 거친 주천강은 강림(講林)에서 치악천에서 내리는 물과 합쳐지고, 도원리의 섬안이 앞에서는 원주군(原州郡) 신림면(神林面) 황둔(黃屯)에서 흐르는 황둔천과 합류한다. 주천강은 황둔천과 함께 복주머니 형상의 섬안이[島內]를 곡류하여 흐르므로 이곳은 3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섬이 된다. 지금은 관광농원이 많이 들어서 여름철 유명한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 흙둔지[土屯]
수주면 섬안이[島內]에서 두학교(斗鶴橋) 건너에 있는 마을이다. 구룡산(九龍山, 955.3m)의 낙맥이 뭉쳐서 새둥지처럼 생긴 둔덕을 형생했으므로 '흑둔지' 또는 '토둔'이라고 한다. 횡성 태기산을 발원으로 하는 주천천과 운학(雲鶴), 두산(斗山)에서 흐르는 물이 합쳐지므로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아직 오염되지 않은 이곳은 여름 한철 전국에서 모여드는 피서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특히, 푸른농원과 두덕골 밑에 있는 새하늘 농원은 자연경관이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 두덕골[斗德谷]
흙둔지의 북쪽으로 운학리 하일 밑에 있는 마을이다. 서쪽으로는 두산교(斗山橋)가 있어 이곳을 지나면 두산리로 갈 수 있다. 두산교가 놓이기 전에는 두덕나루터에서 나룻배를 이용하였다. 이곳 역시 구룡산 줄기의 끝이 섬안이강과 접하는 곳으로 큰 둔덕 위에 형성된 마을이므로 '둔덕골 → 두덕골'이라고 불렀다.
일설에는 옛날에 유명한 관포(官砲)였던 한두만(韓斗滿)이라는 포수가 마을에 나타나서 가축과 사람을 물어 가는 큰 호랑이를 화승총으로 쏘아서 죽였다고 한다. 그때부터 포수인 한두만의 덕(德)을 입은 마을이라 하여 '두덕골[斗德谷]'이라는 지명이 생겼다는 얘기도 전하고 있다.

■ 오리목
두덕나룻터 건너인 북쪽 주천강 가에 있는 마을이다. 예전부터 이곳 강가에는 물오리, 황오리, 비오리 등이 많이 모여들었으므로 '오리목'이라고 한다는 얘기가 있다. '목'을 목재이인 '위치'를 뜻하는 말로 섬안이에서 오리목까지는 오리(五里)의 거리가 되므로 '오리목'이라는 지명이 붙었다고도 한다.

■ 두만동(斗滿洞)
두산리(斗山里)의 중심 마을로, 옛날 나라에다 짐승을 잡아서 바치는 한두만(韓斗滿)이라는 유명한 관포(官砲)가 이 마을에 살았다. 한 포수는 마을에 좋은 일을 많이 하였으므로 그 사람의 이름을 따서 '두만이가 사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두만동'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하나, 실제로 '두만(頭滿)'이란 뜻은 '산(뫼)'안쪽을 의마하는 '둠안'에서 '두만'으로 변한 것이다.

■ 당골[堂谷]
두만동 북서쪽으로 5마장 정도에 있는 마을이다. 이곳에는 두산리의 대표적인 서낭당이 있으므로 '당골'이라고 한다. 음력 9월에는 생기, 복덕을 맞추어 제주와 유사를 뽑은 후 마을에서 배용을 각출하여 돼지머리, 3색실과 그리고 주과포와 메를 지어 놓고 당고사를 성대히 올렸다고 한다.

■ 산신제골
당골과 중터 사이로 산신에게 제사를 올리던 산신당이 있는 곳이므로 '산신제골'이라고 한다. 지금은 옥수사절에서 산신각을 다시 지었는데, 그 영험함을 믿는 사람들이 각지에서 찾아온다고 한다.

■ 하일(下日, 夏日)
운학리의 중심마을로 운학분교와 수주면 운학출장소가 있다. 여름철이면 철새인 왜가리와 두루미떼들이 많이 모여들어 이 마을에서 서식하였다. '일(日)'은 '곡(谷)', '실(谷)'과 마찬가지로 '동네'를 의미하는데 윗마을인 고일(高日) 아래에 있으므로 '하일(下日)'이라고 했는데, 下가 夏자로 변형되었다. '하일'은 '아랫마을'이라는 뜻이다.

■ 서운(瑞雲)
운학리(雲鶴里)의 끝마을로 옛날 행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원집인 '서원(瑞院)'이 있었다. 원지명은 서원이었으나 후에 '서운(瑞雲)'으로 잘못 표기되었다.
운학은 교통의 오지로 예전부터 생활권은 횡성군 안흥이었으므로 오두치 재를 넘나드는 행인들이 많았고 이 마을에 원집이 있었던 것이다. 원터는 서운의 주막거리 맞은편의 사양진 곳에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행인이나 장사꾼들이 넘어 다니던 오두치재에는 그들이 여행의 안녕을 기원하던 서낭당과 돌무더기가 있었는데, 지금도 당목인 자작나무가 남아 있다고 한다. 서운은 화전정리를 하던 70년대 초에는 80여 가구가 골짜기마다 살았으나 지금은 10여 가구에 노인들만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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