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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234~286) 백월
고구려(300~331) 내성현
신라(757년) 내성군
고려(1167년) 영월현
고려(1372년) 영월군
조선(1699년) 영월도호부
조선(1895년) 충주부 영월군
조선(1896년) 강원도귀속
조선(1905년) 원주관할 주천현을 영월군으로 편입
1931.3.1 양변면을 주천면, 수주면 분할
1937.7.1 군내면을 영월면으로 개칭
1960.1.1 영월면을 영월읍으로 승격(1읍7면)
1963.1.1 봉화군 춘양면으로 덕구리, 천평리를 상동면에 편입
수주면의 월현리, 부곡리, 강림리를 횡성군에 편입
1973.7.1 정선군 신동읍 천포리 일부를 편입
상동면을 상동읍으로 승격(2읍6면)
1986.4.1 상동읍 녹전리, 석항출장소를 통합 중동면 설치
1998.10.12 2읍7면1출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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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남부지역의 문화, 교통, 교육 상업의 중심지인 영월은 이미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흔적이 남아 있다.
이러한 사실은 하동면 각동리에서 돌칼, 돌도끼 등이 출토되었고 외룡리, 와석리, 예밀리에서 고인돌이 발견되는 것에서 입증되고 있다.
삼한 시대에는 진한의 일부분이었고, 고이왕(234~286년)때 백제에 속하게 된 영월은 백월(百越)이라고 하였는데, 가구수가 100호가 넘는다는 뜻이 있었다 한다.
그 후 고구려 미천왕(300~331년)때 고구려 남하로 그 속령이 되었으며 초기에는 내생현(奈生縣)이라 했다.
신라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이 고장도 신라에 속하게 되었는데 초기에는 신주(新州)에 속하게 되었고, 757년 경덕왕 16년, 정유 12월에 통일 후 지방 행정구역을 정비할 때 9주(州) 5소경(小京)으로 구획(區劃)하면서 내생군을 내성군(柰城郡)으로 고쳐 명주(溟州-지금의 강릉)에 소속시켰으며 지금의 평창, 주천, 영춘을 내성군에 소속시켰다.
고려 시대에는 성종(成宗) 14년(995년) 1월 내성현의 일부이던 백오현을 평창현으로, 자춘현을 영춘현으로 고쳐 주천현과 함께 원주군에 소속되었다.
이 고장이 지금의 지명인 영월로 된 것은 1167년 의종 21년이며, 1372년 공민왕 21년 5월 이 고을 출신 연달마실리(延撻磨失里)가 환관(宦官)으로 명나라에 있으면서 큰 공을 세웠다 하여 영월현을 군으로 승격시켰다.
그리고 1399년 영월군을 강원도에 이속시켰다.
1698년 숙종 24년에는 영월에 유배되어 숨진 노산군을 단종으로 복위하고, 그 능묘가 있는 영월군을 도호부로 승격하고 부사를 배치했다.
그 후 고종 32년(1895년) 도호부를 없앨 때 다시 군이 되었으며 원주, 평창, 정선과 함께 충주부에 편입되었다가 1896년 다시 강원도로 복귀 되었다.
1905년 주천면과 수주면이 다시 편입되었고, 1960. 1. 1 영월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63. 1. 1 경북 봉화군 춘양면 천평리(川坪里)와 덕구리(德邱里)가 영월군에 편입된 반면, 수주면 강림리, 부곡리, 월현리가 횡성군으로 이속되었다.
1973년 정선군 신동면 천포리 일부가 영월군에 편입되었으며, 상동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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