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계곡
영월문화원 2007.10.05
소재지 : 하동면 와석리
문의처 : 문화관광과 : 033) 370-2531
 

김삿갓 묘역이 알려지기 전에는 와석계곡이라 했다.
이 계곡은 경북 봉화군에서 발원해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를 지나 김삿갓 묘역으로 흘러든다.
맑고 풍부한 수량과 깊은 골짜기와 울창한 수림을 가진 산세를 휘감아 돌며 빼어난 경관을 이루며 흐른다.
이러한 김삿갓 계곡은 맑고 차가워 예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그러나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와 충북 단양군 의풍리를 연결하는 도로가 개설되면서 상당부분 훼손되었다.

곳곳에 기암괴석과 굽이치는 계류가 속세를 잊게 한다.
김삿갓 계곡에서 김삿갓의 시 한 수를 읊으며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킨다면 그 어떤 운치와도 비견될 수 없을 것이다.

삿갓 하나 눌러쓰고 평생을 정처없이 떠돌아다닌 방랑시인 김삿갓!
가는 곳마다 전설적인 일화를 남긴 인물이지만 그의 집터와 묘소가 영월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김삿갓 일가가 숨어살던 집터와 묘소가 영월에서 발견된 것은 1982년 10월의 일입니다.

김삿갓(1807~1863) 본명 김병연.
그가 다섯살이 되었을 때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고, 당시 그의 조부 김익순은 선천부사겸 방어사였습니다.
김익순은 홍경래군에게 항복하고 목숨을 구걸하였는데 이듬해 난이 평정된 후 김익순은 처형당하고 그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습니다.
역적의 자손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고향에 살 수 없었던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영월군 와석리 깊은 산중에 숨어살게 됩니다.
김병연이 20세 되던 해인 1827년 영월 동헌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조부의 행적을 모르고 있던 그는 김익순의 죄상을 탄핵하는 글을 지어 장원을 차지하게 됩니다.
집에 돌아온 그는 어머니로부터 그동안 숨겨왔던 집안내력을 듣게 되었고 역적의 자손이라는 것과 그 조부를 비판하는 시를 지어 상을 탄 자신을 용서할 수 가 없었습니다.
하늘이 부끄러워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했던 그는 그길로 집을 나와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삶은 그렇게 가출로 이어져 삿갓 하나 쓰고 전국 방방곳곳을 방랑하다가 향년 57세로 전남 화순군 동북땅에서 객사하여 차남인 익균이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노루목 양지바른 곳에 그의 외로웠던 육신을 모셨다 합니다.

비기서인 ''정감록'' 과 조선 명종 때 남사고가 지은 ''남격암산수십승보길지지''에 영월 정동인 이곳을 어지러운 세상에서 난리를 피할 수 있고 삼재가 들어오지 않는 10승지라고 지적했듯이 정감록 신봉자들이 살았던 삶의 터전이었다.
기묘사화 때 조광조의 후손들이 난을 피해 흘러 들어와 명생동에 정착하여 조촌이라는 마을을 형성했으며, 김삿갓도 홍경래의 난을 피해 와석리 어둔으로 찾아 들었다.

와석리는 와인리를 제외한 모든 촌락이 심산계곡의 화전촌으로 81가구 330여 명의 인구가 와인리, 거석리, 둥릉골, 싸리골, 곡골, 노루목, 어둔, 미사리 등지에서 송이버섯, 산나물, 약초 등을 채취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도로는 현재 김삿갓묘역 까지 포장공사가 완료되어 있다
 

 
>자가용
1. 영월→31번 국도로 동강교를 건너 고씨동굴 방향 595번도로로 직진→ 고씨동굴 지나 11㎞ 지점 삼거리에서 좌회전. 장승 공원→ 와석재를 넘어 3.8㎞ 전진하면 오른편에 김삿갓유적지 팻말이 보임→  팻말을 따라 산길로 들어갈것.

대중교통
1. 영월 버스터미널에서 계곡 입구까지 하루 7차 례 버스가 있다.
2. 입구에서 삿갓마을까지는 6.2㎞. 보통 걸음으로 한시간반 거리
내리계곡
조선 제6대왕 단종릉 - 장릉
230-805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2 TEL : 033-373-3434 FAX : 033-373-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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